법화경 `불난 집의 비유` - 2

"그렇다. 사리불이여, 그대의 말대로이다. 바른 깨달음을 얻어 존경받는 여래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모든 고통과 혼란, 고뇌, 걱정으로부터 벗어났으며, 또 무명의 어두운 막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였다. 또 여래는 여러가지 지혜, 열 가지의 힘, 네 가지의 두려움 없는 자신, 열여덟 가지의 부처님에게만 있는 특유한 상호를 갖추고 신통력으로써 대단한 힘을 가지며 세간의 아버지시며, 위대하고 절묘한 방편과 최고의 지혜의 궁극에 도달한 분이시며, 대자비자시며, 싫증내지 않고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 자비심 깊은 분이시다.

여래는 큰 괴로움과 근심의 불덩어리에 타오르는 낡은 집과 같은 이 `삼계`속에 태어나신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일어나는 고뇌, 우울, 근심 속에서 무명의 어두운 막에 싸여 있는 중생들을 애욕과 증오,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시키기 위해서이며, 최고의 바른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서이다. 여래께서는 고뇌와 불안의 불길에 타고 있는 낡은 집과 같은 삼계 속에 출현해서 다음과 같이 보신다.

`사람들은 생로병사와 비탄, 고뇌, 우울, 근심으로 불타고 삶아지고 달구어지고 시달린다. 또 그들은 향락과 욕락 때문에 여러가지 괴로움을 겪는다. 즉 현세에서 세속적인 것을 찾아 재물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내세에는 지옥이나 축생, 야마(염마)의 세계에서 여러가지 많은 괴로움을 맛볼 것이다. 비록 신이나 인간 속에 태어나더라도 빈궁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하는 괴로움을 경험한다. 더욱이 그런 괴로움 덩어리 속을 윤회하면서도, 장난치고 기뻐하며 즐기고 있다.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도 않으며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당황해하지도 않기 때문에 도망칠 궁리도 하지 않는다. 불타고 있는 집고 같은 삼계에서 즐거움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커다란 불덩어리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라고. 사리불이여, 여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진실로 중생의 아버지이므로, 중생들을 이런 큰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고, 중생들이 즐겁게 놀고 장난할 수 있도록 그들이 헤아릴 수 없고 알 수 없는 부처님의 지혜로 신기한 즐거움을 그들이게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고.

사리불이여, 그래서 여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지혜와 힘과 신통력이 있다고 해서 적절한 방법을 쓰지 않고 중생들에게 여래의 지혜의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는(사무외) 자신을 가르친다 해도 그들이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5욕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삼계의 환락에 집착해서 생로병사, 비탄, 괴로움, 우울, 근심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불타고 삶아지고 달구어지고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불꽃에 싸여 있는 낡은 집과 같은 삼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부처님의 지혜를 누릴 수가 있겠는가`라고.

사리불이여, 팔힘이 센 그 가장이 그 힘을 쓰지 않고 절묘한 방편으로 아이들을 불타고 있는 집에서 도망치게 한 뒤 크고 훌륭한 탈것을 주는 것처럼, 바른 깨달음을 얻은 여래는 여래의 지혜의 힘과 두려움 없는 자신을 갖추고 계시지만 여래가 가지고 있는 지혜의 힘을 쓰지 않으시고 절묘한 방편을 사용하여 불길에 싸인 낡은 집과 같은 삼계로부터 중생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지혜로 세 가지 탈것을 보이신다. 즉 성문을 위한 탈것과 독각을 위한 탈것과 보살을 위한 탈것, 이 세 가지 탈것으로 중생들에게 의욕이 생기게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대들은 불타고 있는 집과 같은 삼계 속에서 찬한 모양과 소리, 향기, 맛, 접촉에 기쁨을 느껴서는 안된다. 이 삼계에서 즐기고 있는 그대들은 5욕의 즐거움을 동반한 애욕으로 불타고 달구어지고 시달리고 있다. 이 삼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를은 성문을 위한 탈것, 독각을 위한 탈것, 보살을 위한 탈것의 세 가지 탈것을 얻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증하며 틀림없이 세 가지 탈것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삼계로부터 벗어나도록 진심으로 노력하여라"라고. 또 나는 이런 말로 의욕이 생기게 한다. "아아, 중생들이여, 훌륭한 탈것은 성자들의 찬탄과 위대한 즐거움을 갖추었다. 그대들은 그 탈것으로 온갖 놀이를 하고 기뻐하며 즐길 수 있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다섯 가지 능력,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부분과 네 가지 선정, 여덟 가지 해탈과 삼매로써 큰 기쁨을 체험할 것이고 또 큰 안락과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사리불이여, 그 경우 현명한 중생들은 세간의 아버지인 여래를 믿는다. 그리고, 여래의 가르침에 전심 노력한다. 그 중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따르려고 하는 중생들은 자신의 완전한 열반을 위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달으려고 여래의 가르침에 전심한다. 그들은 삼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성문의 탈 것을 구한다. 그것은 마치 사슴 수레를 원하는 아이들이 불타고 있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다. 또 스승 없이 얻은 지혜와 선정에 의한 조용함을 구하는 중생들은 자신의 완전한 열반을 위한 인연의 도리를 깨달으려고 여래의 가르침에 전심한다. 그들은 삼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독각의 탈것을 구한다. 그것은 마치 양 수레를 원하는 아이들이 불타고 있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다.

또 일체지자의 지혜, 부처님의 지혜, 저절로 생기는 지혜, 스승 없이 얻는 지혜를 구하는 중생들은 세간을 자비로이 여겨 천신과 인간 등 대중의 이익과 행복을 바라며 또 모든 중생을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게 하려고 여래의 지혜의 힘과 두려움 없는 자신의 열 복덕을 깨달으려고 여래의 가르침에 전심한다. 그들은 삼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큰 탈것(대승, 大乘)을 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대사`라고 불린다. 그것은 마치 소 수레를 원하는 아이들이 불타고 있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다.

사리불이여, 아이들이 불타고 있는 집에서 무사히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부유함에 맞게 아이들에게 한 가지 훌륭한 탈것을 주는 가장처럼 여래께서도 마찬가지이시다. 즉 수많은 중생들이 삼계로부터 벗어나고 괴로움과 두려움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나 여래의 가르침이라는 문을 통하여 밖으로 뛰어 나가 열반의 평온에 이르는 것을 보신다. 그리고 사리불이여, 그때 여래는 스스로의 위대한 지혜의 힘과 두려움 없는 자신의 복덕이 풍부한 것을 아시고, 또 그들 모두가 가지 아들이라는 생각에서 오직 부처님의 탈것으로 그들 모두를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게 하신다. 그러나 중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인 완전한 열반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모두 여래와 같은 열반 즉 위대하고 완전한 열반에 의해 열반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또 사리불이여, 삼계로부터 벗어나 있는 중생들에게 여래는 선정, 해탈, 삼매, 등지라는 훌륭하고 최고의 안락이며 즐겁게 놀 장난감을 주신다. 사리불이여, 그것은 마치 조금 전의 비유처럼 비록 가장은 세 가지 탈것을 말하였지만 아이들에게 다같이 칠보와 여러가지 장식으로 덮이고 모양이 같으며 대단히 크고 훌륭한 탈것을 주었다. 그렇다고 거짓말한 것은 아닌 것처럼 마찬가지로 사리불이여, 여래도 미리 절묘한 방편으로 세 가지 탈것을 보이셨지만 나중엔 오직 큰 탈것인 대승으로써 중생을 열반에 들게 했다고 하여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여래는 풍부한 지혜의 힘과 두려움 없는 자신의 보고를 가지고 계시며, 모든 중생에게 일체지자의 지혜로 가르침을 설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이런 이유에서 여래는 절묘한 방편과 지혜로써 오직 하나인 대승을 설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by 케찹만땅 | 2009/05/02 17:47 | 깨달음의 여정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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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진(四塵)과 오온(五蘊), 그리고 육주(六舟)와 ..
사진(四塵)과 오음(五蔭) 사진은 눈, 코, 혀, 몸의 네 가지 감각기관의 대상인 빛깔(色), 냄새(香), 맛(味), 감촉(觸)을 가리킨다. 또한 이 네 가지 감각 대상에 따라 이루어지는 온갖 만물들도 뜻한다. 오음은 오음(五廕)이나 오온(五蘊)이라고도 한다. 오온의 옛 번역어이다. 육체(色), 감수성(受, 고통과 즐거움을 느낌), 생각(想, 삼세의 여러 존재를 생각함), 행위(行, 일체의 노고가 한 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해감)......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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