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 `예도보(銳刀譜)`

‘조선세법(朝鮮勢法)’에서 화랑을 상기하기 위해서 새로운 검술로 재구성한 것이 본국검이라면, 당시 군영의 현실에 맞게 이름을 바꾼 것이 예도(銳刀)이다. 예도란 조선 군영에서 사용한 군도(軍刀)의 이름이며, 조선 칼의 기예를 말한다. 예도는 격자술이라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고 실용과 군사들의 단체조련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모원의(茅元儀)의 ‘무비지(武備志)’에 실려 있는, 족보가 확실한 조선의 고대 검법이다. 본래 무보란 아무나 손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한방의 비전과 같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모원의 자신도 중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던 검보(劍譜)를 조선에서 구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흥분했을까. 그 반가움에 이를 ‘조선세법’이라 칭송하였다. 당시만 해도 문화교류에서 남의 나라의 것은 국적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관례였던 것 같다.
 

◇예도의 자세를 시범하고 있는 십팔기 보존회 회장 신성대 7단.

‘무예도보통지’의 ‘예도’ 항목에는 조선세법의 유래와 예도와의 관계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소개하고 있다. 기예로서는 ‘예도보(銳刀譜)’와 ‘예도총보(銳刀總譜)’를 싣고 있다. 당시 군영에서 연보(連譜)의 형태로 조련을 위해 이미 사용하던 예도는 예도총보였다. 예도보를 만들면서 기존의 예도총보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예도총도(銳刀總圖)’도 함께 실었다.
 
조선세법이란 이름은 타자인 중국에서 붙인 이름으로, 그대로 쓰면 조선의 다른 검법들과 구별하기도 어렵고, 또 당시엔 고대의 검(劍)이 아닌 비교적 가벼운 요도(腰刀)인 예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도’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예도총보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기 이전에 이미 조선군에서 조선세법의 일부를 연결해 가지고 연습지보(連習之譜)로 익히고 있던 터라 그냥 버리기 아까워 ‘예도’ 뒤에 붙여둔 것이다.

 

예도의 골자는 격자격세(擊刺格洗)의 16세법과 이것을 부연한 24세(勢)로 이루어져 있다. 예도의 세명(勢名)은 화려하고 시정이 넘치는 이름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다. 그만큼 실학사상이 배어 있다. 그렇더라도 거정세(擧鼎勢), 즉 ‘두 팔로 솥을 드는 것’과 같은 세명은 중국의 유명한 소림권법에서 처음 등장하는 세명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예도의 칼(검)에는 화식단도(華式短刀), 금식환도(今式環刀), 화식검(華式劍) 등이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한중일 삼국 무예의 정수를 뽑아 만든 것이기에 중국의 화식(華式), 일본의 왜식(倭式), 조선의 금식(今式)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무예에서 몸 전체를 움직이는 신법(身法)은 수법과 보법을 보완해주는 것이다. 머리는 의식의 지배 하에 바르게 하고 목은 자연스럽게 세우고, 근육은 긴장시켜서는 안 되며 좌우회전이 부드럽고 자유로워야 한다. 척추는 바로 세워야 한다. 허리는 동작 진행 시에 몸을 움직이는 축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힘은 모두 허리에서 나온다.

 

허리돌림을 통해 검을 움직이고, 허리의 전환으로 힘이 있게 하며, 허리의 힘이 검 끝에 통해야 한다. 결국 몸을 세우고 허리에 중심을 잡아야 360도를 회전하여 공격할 수도 있고 사방에서 오는 적과 맞설 수 있다. 선비들의 마음에서만이 아니라 무인들의 몸에서도 중정(中正)이라는 것이 통한다. 무예는 흔히 서예에 잘 비교되는데 이것은 서예에서 중봉(中鋒)과 같은 것이다.

 

검을 든 사람은 손은 숙련되고, 마음은 고요하여야 한다(手熟心靜). 검을 익힘에는 마음과 동작, 내외 양자를 결합시켜야 비로소 경력이 강해지고 동작에 신운(神韻)이 깃든다. 결국 자유자재로 리듬을 탄다는 뜻이다. 여기에도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원칙이 적용된다.

 

검법의 내용은 가히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보법은 몸과 검이 함께 움직이는 기초가 된다. 검을 꺼내고 타격을 주는 것의 바탕이다. 걸음의 이동은 경쾌하면서도 안정되어야 한다. 보법이 혼란하고 명확하지 못하면 상체가 기울고 흔들리고 신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족심(足心)은 공(空)해야 하고 발가락은 땅을 움켜잡듯이 단단해야 한다.

 

보폭은 연속 동작 중에는 조금 작아야 하고 정지 자세에는 조금 커야 한다. 적당해야 하며, 작은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하여야 한다. 이 밖에도 손잡이를 잡는 법, 남은 손을 쓰는 법 등도 승패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처럼 훌륭한 우리의 무예가 이 땅에서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명(明)의 모원의를 통해서 되찾게 된 것을 두고두고 통탄했지만 그러나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문화는 때때로 남의 것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고, 나만의 것인가 싶으면 남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같은가 싶으면 다르고, 다른가 싶으면 같은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진화론이나 전파론, 혹은 구조기능론이나 생태적응론 등이 있다. 아무리 원천과 소속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는 흐르는 것이고, 변하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조선세법.

‘‘조선세법 24세’는 지금까지 알려진 동양의 모든 검법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하의 모든 검법의 기본이 되는 명실상부한 검경(劍經)이다. 특히 중국 무림의 어떤 검법도 이름은 요란하지만 실제 동작에서는 결코 이 24세를 벗어나질 못한다.

 

이것은 뒤에 검의 노래인 검결(劍訣)을 이야기할 때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 ‘조선세법’의 검보는 과연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아마도 ‘검’이라고 한 것을 보면 양날의 검이 주병기로 사용되던 고려 초 혹은 그 이전인 통일신라 때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조선검법24세(朝鮮劍法二十四勢)는 쌍수도·예도·제독검·본국검 등 모든 본국(本國) 검법(劍法)의 모체(母體)가 될 뿐 아니라 동양의 모든 검법의 근원(根源)이 되기에 세계 무예사에서도 희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 ‘기예질의(技藝質疑)’ 편은 조선이 활에 너무 의존하고 검이나 창을 소홀히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에서는 가장 잘 다룰 수 있고, 동시에 쉽게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경제원칙이 존중된다. 예부터 활의 나라, 동이(東夷)라고 한 것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산죽(山竹)에서 비롯된다. 가볍고 곧아서 멀리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해외에 치우쳐 있는 곳이라 예부터 전하는 것은 다만 궁시(弓矢) 한 가지 기예만 있고, 칼과 창은 헛되이 기기(器機)만 있고, 익히고 쓰는 법은 없다. 말 위에서 창 쓰는 한 가지 기예가 있어 비록 시험장에서 쓰이나, 그 용법이 자세히 갖추어져 있지 않은 까닭으로 칼과 창은 버려진 무기가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대진할 때 왜적이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해 오면 우리 군사들은 비록 창을 잡고 있고 칼을 차고 있어도 칼은 칼집에서 뽑을 시간이 없고, 창은 서로 겨루어 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인 채 흉악한 왜적의 칼날에 꺾이고 만다. 이는 모두 창과 칼을 쓰는 법(法)이 전승되어 오지 않았던 까닭이다.”

 

예도를 전하는 십팔기보존회는 그동안 200여회의 각종 무예시연회를 개최했으며, 90여회의 국립민속박물관 정기공연을 했다. 회장 신성대씨는 현재 40년 경력의 십팔기인으로 이 회를 이끌고 있으면서 무예의 정론을 펼치면서 제대로 된 무예인구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원행을묘반차도(1795년 2월).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13차례 화성 능행 행차 중 가장 규모가 성대했다. 그림의 중앙 좌마라고 쓰인 곳이 정조대왕의 자리이고, 전후좌우를 장용대장과 별감을 비롯하여 무장과 무인들이 둘러쌌다.

 

그는 무예인으로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문화인으로서도 괄목할 업적을 냈다. 그가 함께 운영하는 동문선 출판사를 통해 그간 ‘무예도보통지’ 영인본을 비롯하여 전통무예관련 전문서적 십여 권을 출간하여 한국무예의 뿌리 찾기와 수준향상, 질적 변화를 연출해낸 장본인이다. 그는 또 무(武)를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열여덟 가지 무예 종목과 네 가지의 응용 종목, 그리고 두 가지 오락 종목이 실려 있다. 수많은 참고 자료와 해설이 있지만 이 책에는 무예 이론이 거의 없다. 단지 ‘기예질의’ 편에 명(明)의 허유격(許遊擊)과 한교(韓嶠)가 나눈 대담이 실려 있는데, 무예와 전술에 대한 원론적인 몇 가지 이야기뿐이다.

 

그리고는 각 종목마다 세명의 동작 설명과 함께 총보와 총도로서 투로(套路)를 그려 놓고 있다. 심지어 동작 설명만을 따로 언해본으로 추가해서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도 누구든 따라 할 수 있게 해놓았다. 대개 이 정도면 ‘웬만한’ 문중에서 제대로 배운 무예인이라면 그 동작들을 재연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웬만한’ 문중이 없는 것이 문제다.

 

십팔기(十八技) 중 6기(技)는 곤봉(棍棒)·등패(藤牌)·낭선·장창(長槍)·당파·쌍수도(雙手刀)이다. 여기에 죽장창, 기창, 예도, 본국검,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권법, 편곤 등 12기(技)가 추가되어 십팔기가 된다. 만주 벌판에 후금(後金)이 등장하자 조선은 기마전에 능한 후금에 대비하기 위해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협도곤(俠刀棍), 구창(鉤槍) 등의 무예를 도입된다. 광해군은 여기에 권법(拳法), 왜검(倭劍)을 추가하여 ‘무예제보번역속집’을 어명으로 출간하였으나, 그의 개혁정책은 인조반정으로 불발에 그친다.

 

이후 영조 대에 이르러 대리청정하던 장헌(사도)세자가 ‘무예제보’의 6기에다 12기와 기예(騎藝) 4기를 첨가하여 ‘무예신보’로 정비하였다. 이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십팔기’란 조선의 국방무예가 완성된 것이다.

 

정조 시대에는 이러한 전조(前朝)들이 이룩한 무예정책(군사정책)의 바탕 위에서 다시 격구, 마상재의 놀이성이 짙은 2기를 추가하여 하나의 완벽한 계통을 가진 전문 무예서적으로 ‘어정무예도보통지(御定武藝圖譜通志)’를 완성한다. 이로써 24기(技)가 완성된다.

 

무예도보통지는 화약을 쓰지 않는 냉병기의 모음이다. 당시 조총이라는 화약무기, 즉 열병기가 등장한 뒤였는데 왜 정리한 것일까. 조총은 활보다는 전쟁에서 5배의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조총이 원시적인 단계여서 활도 효과가 있었다.

 

또 냉병기와 열병기가 서로 조화할 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십팔기는 개인무예가 아니라 병장무예로 표준화되고 규격화되었지만 개인의 무예도 겸할 수 있다. 스포츠는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지만 무예는 밀행(密行)을 중시한다. 보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혼자서 해야 잘 된다.

 

현재 십팔기를 거쳐 간 인구는 10만여명에 이른다. 네덜란드를 비롯, 해외에도 전파되고 있다. 십팔기 중 본국검이나 예도는 가장 화려한 기술이다. 또 냉병기 중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곤봉술은 무예의 어머니이다. 권법 자체도 무예이지만 무예인이 무기를 들어야 할 때 곤봉은 무기 가운데 가장 살생력이 약한 것이고 따라서 수양무술과 호신무술로도 가장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가의 무인들은 권법에 이은 곤봉술을 익힌다. 체육은 20대가 잘하고 40대, 60대로 갈수록 못한다. 그러나 무예는 40대가 20대보다 잘하고 60대가 40대보다 잘한다. 무예는 힘과 젊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예는 결국 인간의 성숙과 더불어 발전한다. 무예는 전쟁에서 결국 적을 이겨야 하는 것이지만 오랜 시간을 끌면서 어떤 방법으로 하든 이겨야 하는 격투기가 아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십팔기가 오늘에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구한말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계기로 구식 군대가 해산되고, 한일합방과 함께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십팔기’. 십팔기라는 이름 석 자는 산중에 숨어버린 구식 무관을 징검다리로 하여 해방 후 해범 김광석 선생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본다.

 

무예의 전승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신화나 전설이 할머니의 이야기로 손자에게 전해지듯이 그렇게 되살아나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유전인자처럼 전해진다. 무예도 문화인자이다. 이런 인자들은 마치 무의식의 겨울에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날 때가 되면 의식의 봄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by 케찹만땅 | 2009/05/08 11:53 | 무술과 건강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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