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서 너무 벗어난 각색 삼국지 용의 부활

유덕화는 아주 괜찮은 배우고, 조자룡은 삼국지를 통틀어 등장하는 호걸들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인물이라 그를 조명하는 영화에 대해 관심이 가는건 어쩌면 당연했다.

영화에도 `각색`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만 좀 너무 벗어났을까... 삼국지를 읽지 않았거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는 작품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관우 장군 역을 `추룡`이 맡은 부분은 다분히 인상적이었고, 그가 쓰는 청룡언월도의 모양이 조금 이상한 점은 그래도 장비의 수염이 밋밋한 것에 비하면 별로 크게 짚어볼 사안은 아니었다. 그래도 장팔사모만큼은 모양이 그럴싸~했다.

삼국지는 철저히 남성들의 이야기다. 여성 인물들이라곤 동탁과 여포의 `초선`, 조조가 추한 염문을 뿌린 추씨 부인, 조조의 백만대군 속에서 유비의 아들을 조자룡에게 맡긴 후 우물에 몸을 던진 유비의 부인, 제갈공명이 남만에 원정을 갔을때 전투에 등장했던 여인 등이 있다.

조조에게 손녀가... 있었어?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삼국지 후반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위나라의 사마중달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실감나는 대목이라고 할 만하다.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한 수 보여주는 신기막측한 제갈량의 병법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쳐 이긴다"는 말까지 탄생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출사표`를 던진 제갈공명의 병법과 전략은 언제나 그렇듯이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그런 그도 두 번의 장탄식을 했으니 그 처음이 관우 장군의 부재를 아쉬워했고, 나머지 두 번째가 조운 장군이 없음을 그리워했던 것이었다.


조자룡은 용기와 무력뿐만이 아니라 지략까지 겸비하여 병법에 뛰어난 장수 중의 장수였고 칠순이 되는 나이까지 전투에 임해서 백전불패의 위업을 이루어냈으며 그 늙은 나이에도 적장을 여럿 베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 마지막까지 남아 천수를 누렸다. 아마 제갈공명이 가장 신뢰했던 장수였으리라.

삼국지 소설을 읽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비의 아들 유선을 조조의 백만 대군이 포진한 전장터에서 구출하는 대목은 전율 그 자체였다. 내심 이 장면이 제대로 연출될까 하는 기대는 욕심이었다 ^^ 갓난 아기를 데리고, 적진의 군사들을 향해 창을 내뻗으며 마치 배가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듯 조조의 군사들이 갈라지는 장관을 보고 감탄하는 조조. 그 모습에 분기탱천한 하후은이 조자룡의 앞을 막아섰으나 단칼에 쓰러지고... 이때 조자룡이 얻었던 칼이 바로 조조가 하후은에게 하사했던 청홍검이었다.

삼국지에 등장한 인물들 중 그 일대기를 조명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바로 조자룡이라 생각되고, 또 그런 영화를 보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이 많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어서 이미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삼국지의 기억을 되살려 그를 기억해본다.

영화의 마지막에 홍금보의 나레이션으로 짤막하게 소개되는 이후 이야기는 제갈공명의 후계를 이어받은 '강유'가 꺼져가는 촉나라의 명맥을 잇기 위해 어려움이 가득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마지막으로 촉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갈 때 천하를 호령했던 주인공들의 손자들이 분연히 일어서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가는 중원의 멍석말이 한 판이 후삼국지에서 계속 펼쳐진다. 그리하여 결국 중원을 통일한 나라는 '진나라'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위업을 달성한 세력은 조자룡의 후예들이었다.

by 케찹만땅 | 2009/06/09 08:11 | 영화와 드라마의 감동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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