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과 대승 3

불교 초기집단에서 불타의 소리를 직접 들은 자들을 `성문(聲聞 ; sravaka)`이라고 불렀다. 사람이다 보니 이런 자들 가운데 불타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자부심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에게 권위를 주고 규율을 주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고 고착화되고 장기화되면, 그것은 역으로 권위주의, 형식주의, 차별주의를 낳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초기의 생동하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며, 분명 개선되어야 할 상황이지만 기득권자들의 권위의 타성과 관성체제에 의하여 눈덩이처럼 굴러가는 역사가 전개될 소지가 다분하다. 바로 초기 불교승단이 이와같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으로 `불타`의 위치를 평범함이 아니 `극존`의, 범인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권위의 상징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그렇게 절대의 자리로 높여 놓아야만, 그의 소리를 직접 들은 자기들만의 특수한 권위가 확보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파불교의 상황이 정확히 이런 상황이었다. 싣달타의 사후, 불교는 아쇼카(Asoka, 阿育王, 치세 268~232 B.C.)라는 마우리아 왕조 제 3대의 명군, `전륜성왕`을 만나 크게 그 세를 떨쳤지만, 이러한 세의 확대가 불교승단 내부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오게 된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포만은 많은 부패를 낳게 마련이다. 아쇼카 치세 기간에 이미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 Theravada)와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대중부(大衆部, Mahasanghika)의 분열이 생겼고, 이후 이 양대파의 세부적인 분열이 가속화되어 우리가 통칭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부르는 시대가 연출되게 되는 것이다. 이 부파불교시대를 대변하는, 소위 `소승`으로 규정되는 대표적인 종파가 바로 `設一切有部(Sarvastivadin)`라고 하는"'아비달마 교학불교"인 것이다.

이러한 부파불교시대에, 즉 서양에서는 `그노시스(영지)`를 추구하는 지혜운동이 `요한복음`사상의 배경을 이루는 것과 동시대에, 바로 불교종단 내부로부터 이러한 아라한의 독주, 독선, 독재의 편협성을 타파하고 누구든지, 즉 출가자나 재가자를 불문하고 곧바로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대중운동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에서 이른바 종교개혁에 따른 `프로테스탄트`교의 출현과도 유사한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새로운 진보세력은 아라한됨을 추구하는 자들을 성문(聲聞), 독각(獨覺) 혹은 연각(緣覺)이라 불렀다.

by 케찹만땅 | 2010/02/26 11:46 | 깨달음의 여정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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