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검은 물질들> `황금나침반` 씨리즈

황금나침반 1부 - 10점
필립 풀먼 지음, 이창식 옮김/김영사

His Dark Materials. Golden Compass

판타지 대작 소설들의 공통된 특징을 들어보자면 가상의 세계가 등장한다는 점을 맨 첫째로 꼽을 수 있다. 그 다음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결국엔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대결로 인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같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상상에서 만들어지는 시각적인 볼거리가 영화나 게임으로 만들기에도 적합한 아이템이니 판타지라는 분야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에게도 전해오는 옛 이야기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판타지로 만들기에 적절한 소재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이 3부작 소설의 소제목을 한 번 정리해 보자. 큰 제목은 '그의 검은 물질들(His Dark Materials)'이지만, 각각의 부제가 달려있으니 1편은 황금나침반(Golden Compass)이고 2편은 신비한 칼(Subtle Knife), 3편은 호박색 작은 망원경(Amber Spyglass)이다. 1편의 제목을 북쪽의 빛(Northern Light)이라 하기도 한다. 1편의 배경이 되는 곳이 북극과 스발바르 섬이라서 그런가 보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인 스발바르 섬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작가가 어느 정도 의도한 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약간은 기묘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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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어보고 느낀 가장 큰 점은 작품의 공간적인 배경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규모는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단지 영토를 말하는 게 아니라서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등의 백만대군 연출과는 다른 개념이다. 특히 1편만 읽어보고서는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었다. 1편에서는 런던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을 찾아 주인공 리라와 집시들이 북극으로 떠나는 소위 '미아찾기 원정대'의 모험이 시작되고, 이야기의 대부분이 추운 북극지방에서 펼쳐진다. 그러면서 혹독하게 추웠던 올 겨울 기나긴 밤에 이들과 함께 추위에 맞서 보았다.

정밀하고 신비한 마법의 타로카드 한 세트가 고스란히 담겨진 것 같은 황금으로 만든 나침반을 우연한 기회에 얻게된 소녀 '리라(Lyra)'. 특별한 훈련을 거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나침반이 가리키는 걸 읽을 수 있는 능력은 그녀가 수천년 전부터 마녀들의 전설에 내려오던 그 아이라서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녀의 무기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주는 황금나침반인 진실측정기 '알레시오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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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편의 배경이 되는 런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런던이 아니었다. 이건 2편을 계속 읽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쩐지 1편에서 묘사하는 세계는 일종의 가상세계라고 느껴질 만큼 우리가 사는 그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고, 2편에서는 또 한 명의 다른 주인공 '윌(Will)'이 등장한다. 바로 우리 세계에서. 이쯤되면 위에서 말한 소설의 규모가 크다는 설명이 이해가 된다. 작가는 다중세계를 소설 속에 펼쳐놓았다. 그것도 리라와 윌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살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만났으니 이런 기가 막힌 인연이 어디 있을까.

2편에서는 제목에서 나왔듯이 모든 것을 자를 수 있고, 심지어는 공간을 잘라 차원의 문까지 열 수 있는 신비한 칼인 '이사히터(만단검)'의 주인이 된 윌이 리라와 함께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된 후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천사들을 비롯하여 곰들의 왕 '이오레크 뷔르니손'과 스파이로서의 역할에 정말 잘 어울리는 소인국 사람들과 함께 더 큰 모험속으로 뛰어들게 되고 급기야 사람들이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까지 방문하게 된다. 이 부분은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활약 덕분인지 사람들은 죽은 후의 세계를 막연히 천국과 지옥으로 이분화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대표되는 이런 사후 세계관에 대해 작가는 지옥이나 연옥이란 절대자 혹은 섭정이 만든 매트릭스라는 일종의 덫에 걸린 불쌍한 영혼들의 집합소로 표현하고 있다. 실상 본래의 자리로 가야할 영혼들이 그들 본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느 암울하고 칙칙한 세계에 붙들려 있고,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윌과 리라가 친구를 위해 발휘한 우정으로 통렬히 뒤집어 버리고 죽은 영혼들을 안내하여 본래의 자리인 우주 대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적멸보궁'의 자리로 이끌어준 것이다. 여기에 옛부터 전해오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법귀일이나 일귀하처오?(萬法歸一 一歸何處 : 세상 모든 만물이 돌아가는 그 한 자리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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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천사들을 비롯하여 세련된 모습의 아름답고 예의바른 마녀들, 하늘 강철로 만든 갑옷을 입은 전사이자 곰들의 왕, 서양에서 통용되는 유령의 일종인 스펙터(Spectre) 외에도 수 많은 존재들이 출현한다. 그리고 모두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 곧 거대한 전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결은 소설 속에서 낡아 빠지고 구시대적인 어쩌면 작가적 관점에서 사악한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는 교회의 권력과 이를 넘어 근원마저 뒤엎어 버리려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아스리엘 경'과 기존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그간 누려온 절대권력과도 같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교회세력이 서로의 군대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양측은 엄청난 군비를 축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태초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천상의 전쟁과 반역천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확실히 카톨릭이나 기독교가 감추고 있는 고대 역사에는 무언가 대단한 일이 있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진실은 뭘까. 한때 우리나라 기독교 내부에서 일었던 자기비판 중에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먹은 것이 '사과'라는 식으로 너무 원래의 의미를 왜곡해서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선악과'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고, 지금은 거기에 관련된 진실이 거의 가려진 채 극히 상징적인 일부만 성경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신이 뭔 나무에서 열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열매 하나 먹었다꼬, 콧김을 있는대로 뿜어내며 끝내 용서를 모르는 분노를 낸다는 건 너무 밴댕이 소갈딱지의 마음 씀씀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항상 그렇듯이 성경의 내용을 한 번 비틀어보거나 뒤집어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무슨 말이냐면 과연 뱀이 사악한 존재이며 타락시킬 목적으로 이브를 유혹했고, 망구 생각이 없는 그녀가 그걸 받아들였으며 그로인해 우리는 애초에 원죄를 가진 존재가 되었고, 그래서 언제까지나 신 앞에 죄인이 되어 무릎 꿇고 회개하며 용서를 빌어야 할까. 아니면 뱀 혹은 사탄은 원래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있는 존재였기에 그 어떤 진실을 사심없이 이브에게 알려주었고, 지각이 있었던 이브는 그걸 받아들여 아담과 함께 나누었으며 신이 분노했겠지만 그래서 쫓겨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도 아담과 함께 떠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논리를 편다면 신성모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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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주인공 리라는 이브의 위치에 있고, 순수한 목적으로 호박색 망원경을 가지고 온 세계에 통용되는 우주의 물질을 연구하며 리라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메리 말론 박사는 그녀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사탄이라고 명명된다. 물론 잘난 교회에 의해서... 그리고, 정말 교회를 단적으로 표현한 장면은 이 '사탄'을 처단하기 위해 신부 한 명에게 소총을 지급하여 보내면서 그들은 사탄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교회의 영광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신부에게 미리 면죄부를 내리는 웃지못할 그들만의 퍼포먼스도 한 판 보여준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새롭게 다가오면서 공감되었던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마음에 들었으며 영화 '싸일런트 힐'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일종의 통쾌한 카타르시스적 감정이 조용하면서도 웅변적으로 다가왔다. 그뿐 아니라 작가의 탁월한 정신세계와 세상을 보는 관점 역시 무척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역할을 마치고 책의 말미에 이르러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면서도 다른 세계에서 왔기에 상대방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세계에서 생겨나는 죽은자들의 평안한 안식을 위해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 서로의 행복을 빌며 왕래할 수 있는 차원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린 그들의 너무나도 슬프지만 용기있는 행동이 비오는 일요일 오후 이미 굳어버린 줄만 알았던 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그 아름다운 사랑으로 인해 그들은 분명 자신들의 세계에서 '하늘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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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찹만땅 | 2011/03/22 17:38 | 나의 서재와 책 한권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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