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때리고 그리스엔 퍼주고…두 얼굴의 구제금융

2012 그리스
2~3%저리 2400억유로 펑펑
빚 75%탕감 국채로 교환

1997 대한민국
채권자에 단 1弗까지 상환
그것도 9.7% 초고금리 적용
최고 25% 고금리정책 강요
기업도산·고물가 고통 야기

1997년 한국과 2012년 그리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중 잣대도 그만한 것이 없다. ‘악마의 꽃’ 구제금융 얘기다.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교과서’는 없다. 위기의 원인과 대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목적과 파급효과를 비교하긴 어렵지 않다.

1300억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내주며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 구제금융 트로이카는 기존 빚을 50% 넘게 탕감해줬다. 그나마 30년 넘는 국채로 바꿔주니 실제 손해 보는 건 75%에 달한다. 그리스는 25%만 갚으면 되는 셈이다.

하지만 14년 전 외환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의 채권자들은 한국정부에 채무보증까지 요구하며 단 1달러도 손해 보지 않고 모두 받아갔다. 빚 탕감? 우리에겐 그런 방식이 제안조차 되지 않았다.

긴급 지원자금의 금리 수준도 천양지차다. IMF 환란 당시 우리나라는 총지원액 210억달러 중 대기성 차관(SBA) 방식의 1차 지원금엔 4.7%를 물었지만 긴급지원자금(SRF)인 2차 지원금에 대해서는 7.7~9.7%의 고금리가 적용됐다. 아주 돈을 벌어가기위해 구제금융을 퍼주는 모습이다. 현재 IMF가 그리스 1, 2차 지원금에 제시하는 금리는 유리보(Euribor)+1.5%다. 기껏해야 2~3% 수준이다.

당시 IMF는 재정상태가 안 좋아지자 돈을 많이 쓰는 나라에 높은 이자를 물리는 협약을 맺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SRF였다. 말하자면 한국이 ‘시범 케이스’에 걸린 것이다.

당시 IMF는 우리나라에만 특이하게 요구한 게 더 있었다. 고금리 정책을 쓰라는 것이었다. 대내외 금리차가 커야 달러자금이 들어오고 경상수지 흑자를 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게다가 자본시장 개방과 금융 구조조정을 같이 요구했다. 외국인 주식 취득한도는 확대됐고 투자제한 분야는 줄어들었다. 외국 금융기관들의 진출이 거의 무방비로 허용됐고, 단기금융상품 외국인 투자도 장벽이 사라졌다.

시중금리는 25%까지 치솟았다. 서구 할머니들에겐 더없이 좋은 돈벌이 기회가 됐다. 하지만 그런 살인적인 금리를 버텨낼 기업과 가계는 별로 없다. 가계와 기업의 연쇄도산과 실업증가, 물가폭등, 급격한 경기위축이 뒤따랐다.

1996년에 230억달러에 달하던 경상수지 적자는 1998년에 426억달러 흑자로 돌아섰지만, 경기 위축으로 인한 수입 감소와 고환율 때문이었지 고금리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10년 4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당시 IMF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IMF가 일방적인 룰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한국 국민이 많이 어려웠다”며 우리나라에 점령군처럼 군림했던 IMF 업무방식을 비판한 적이 있다.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막 시작된 1998년 초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저명인사들도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한국을 망칠 것이라는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외환위기 당시 IMF의 가혹한 조치가 결국 유럽 재정위기의 시발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을 포함해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이 기울인 경상수지 흑자 노력이 결국 선진국의 적자를 유발했고 재정적자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악마의 꽃’ 구제금융이 초래한 세계경제의 아이러니다. 공정한 국제금융기구를 위한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헤럴드경제 / 신창훈 기자

by 케찹만땅 | 2012/03/10 13:58 | 세상만사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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