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읽는 퇴마록(退魔錄)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

해동밀교의 본산이 화염에 휩싸이며 하늘이 불타던 그날 이후의 에피소드로 시작되는 이야기니까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승희를 만나기 전이고, 준후는 상당히 어렸으며 아직 인드라의 불꽃이 약해 버너 사용에 익숙치 않은 상태에서 주로 부침개를 해먹는데 이용하는 수준이다. 박신부 또한 성령의 푸른불꽃이 충만한 베켓트의 십자가나 JNJR을 얻기 전이면서 그나마 오오라의 위력이 크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는데다 현암 역시 그 엄청난 공력을 겨우 오른팔에만 운용할 수 있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월향은 그 이전부터 그의 왼팔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 “그래. 만약 그렇다면 이건 지금 우리나라 전체에 촉수를 내리고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일 수도 있는거야.”

지금의 인터넷 세상과는 달리 아직은 PC 통신에 머물러 있고,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기 전인 시기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날카로운 지적은 오히려 오늘날에 더 잘 부합하고 있다. 퇴마록은 우리시대 어느 때에나 통용될 수 있는 담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래서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통할 수 있고, 이전 작품들을 읽으면서 가질 수 있었던 그 느낌의 향수가 다시 찾아왔다.

- 아이들과 활기차게 뛰어놀고 싶었다는 단순하고도 아이다운 미련. 그래서 학교에 남아 있으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옥상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수줍음. 외로우면서도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곳으로 스스로를 숨기는 모순. “그래. 너도 외로웠구나.”

-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다.”

이전 씨리즈에서도 간략히 나왔지만 준후는 기존의 교육체계나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게 당연해 보인다. 기성의 시각으로 준후(현암도 포함되겠지만)는 불쌍한 아이일 뿐이다. 더욱이 다른 아이들이나 엄마들이 기피할 대상 1호일 만큼 이상하고 괴상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잘 됐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걸 규정하는 기준이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박신부 역시 사제직을 파문당한 것은 엄청난 불이익과 시련이 될 수 있음에도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계속 사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들과 함께...

국내편에 속하는 3편의 이야기를 지나 세계편이 시작된 후의 에피소드에서는 드디어 현승희도 합류하여 이들은 완전체가 될 면모를 갖추게 된다. 현암에게 처음부터 넌지시 마음이 있었던 승희였지만 이들은 무슨 웬수지간처럼 으르렁거리기 일쑤여서 본 씨리즈를 읽을 때 '얘들, 이러다 정들겠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나중에 이들은... 아, 그리고 만약 백화점에 사악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승희를 보내도록 하자. 제 아무리 강력한 악령이라도 백화점에서 만큼은 승희를 당할 수 없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퇴마사 일행은 모두 저마다 가슴 속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억눌린 분노와 회한이 마음에 사무치도록 깊숙이 자리잡은 이면에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퇴마행이라는 길을 걸어가게 하는 어떤 원동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스스로 돕고, 또 다른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점점 커져간다.

저자 이우혁씨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외전`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그 무언가를 다시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잠시지만 기분좋은 여행을 한 느낌이랄까. 5개의 이야기 중에서 2번째 '보이지 않는 적'과 마지막 에피소드 '생령 살인'이 돋보였다. 이 5번째 이야기에는 백호도 등장해서 반가웠다. `세계편`에서 퇴마사 일행이 유럽으로 출국한 직후에 벌어지는 내용이라 사건을 맡을 인물이 누구일까 잠시 의아했는데 오호~ `주기선생`을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였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웃겼다.

퇴마사 일행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까지 만날 수 있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던 외전. 유일하게 만나지 못한 등장인물들은 윌리엄 신부를 비롯한 외국인들이구나. 퇴마록 말세편 이후의 이야기는 전부터 나오기 어렵다고 봤을때 외전은 씨리즈로 계속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고 하니 잘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데, 무슨 3부작으로 제작된다고..?

by 케찹만땅 | 2013/04/16 11:50 | 나의 서재와 책 한권 | 트랙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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