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인식되어온 호메로스의 오디쎄이아(Odysseia)가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이 길가메쉬 서사시는 그때로부터도 2000년 혹은 더 오래된 고대 수메르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야말로 현생 인류 초기의 영웅을 노래하고 있는 문학의 원형 그 자체이다.

... 호메로스에 의해 탄생한 영웅 오디쎄우스 이야기가 세상에 등장하기 약 2000년전, 영웅 길가메쉬가 메소포타미아 남쪽 수메르의 우루크에 살고 있었다. 길가메쉬는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루크(현재의 이라크 근방) 제1왕조의 5번째 왕이었다. 대홍수 이후 약 4700년 전까지 키쉬에서 우루크로 이어진 수메르의 도시국가에서는 길가메쉬를 포함하여 벌써 28명이나 되는 왕이 왔다가 사라졌다! 길가메쉬만 하더라도 히브리족의 조상이며, 최초의 족장이라는 아브람의 출생연대(약 4127년 전)보다 약 690년 전에 왕위에 올랐다...

지금이야 영웅이라고 하면 불의의 재난이나 어려움이 닥친 상황에서 사태를 수습하고, 궁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오랜 옛날에는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좀 달랐던 듯하다. 어쨌거나 신과 인간들이 같이 살았던 시대에서 보통 사람과는 달리 키가 수 미터에 달하고, 감히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힘이 쎄며 어딜가도 눈에 띄었던 그를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영웅치고는 그 절륜한 힘과 능력을 참으로 비루하게 사용했으니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도 나오는 프리마 녹테(신부의 초야권)의 역사가 이토록 오래되었을 줄이야..

그런 그에게도 필적할 자가 등장했으니 싸움으로 시작한 첫 대면에서 바로 의형제의 인연을 맺은 `엔키두`가 또다른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둘은 의기투합하여 길가메쉬 같은 영웅마저 지리게 했던 괴물이라고 밖에는 묘사할 수 없는 신을 처단하는 위업(?)을 달성하는데 여기엔 꼼수가 있었으니 꼼수의 역사도 이토록 깊다. 어쨌든 이로 인해 수메르의 신 `엔릴`의 분노가 엔키두에 떨어지고, 이를 계기로 길가메쉬의 `불멸`을 갈구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 이때에도 영웅 길가메쉬에 대한 신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 그 뒤로 약 1500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에야 <베레쉬트>가 만들어졌다. 그때에도 최초의 영웅 길가메쉬에 대한 전설이 세상 곳곳에 알려져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족의 작가가 길가메쉬 서사시의 오랜 전승을 참고하여 <베레쉬트>를 썼을 것이라는 추측은 정말로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길가메쉬의 전승과 <베레쉬트>의 연결고리는 서사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창조, 여자의 유혹와 성, 그리고 신들만이 갖고 있던 지혜의 습득, 신들의 정원 딜문,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불로초를 강탈한 뱀, 대홍수로 인간을 절멸시키려는 신들의 계획, 인간의 창조주 엔키의 구원,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우트나피쉬팀(지우쑤드라), 갈가메쉬 서사시를 읽어가노라면 잠시 <베레쉬트>의 행간에 빠져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영생을 찾아 나선 길가메쉬의 방황은 모세나 예수가 광야를 헤맨 이유를 돌이키게 하고, 죽음 앞에 선 그의 절규는 욥의 그것을 듣는 듯하다...

길가메쉬의 아버지는 루갈반다라는 인간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들소의 여신인 닌순이었다. 신화 속의 그는 3분의 2는 신이었고, 3분의 1은 인간이었다. 이 왕은 완전한 신이 아니었기에 죽음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웅은 신들이 누렸던 불멸과 영생에 목말랐다. 그래서 그는 대홍수에서 방주를 만들어 살아난 유일한 인간이자 신들의 축복으로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쉬팀(성경의 노아, 다른 이름으로는 지우쑤드라인데 이게 본명이라는 주장도 있음)을 찾아가 만나는데 성공하고, 신에게서 받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수메르 신화를 알고 있다면 이 책을 길가메쉬라는 반인반신의 영웅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얻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모험이야기로 읽겠지만 만약 수메르 신화를 모르고 있었다면 새로운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에녹이 `우투압주` 또는 `엔메두르안키`라고 되어있다. 수메르 신화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고고학자이자 수메르 문명 전문가인 제카리아 시친 박사가 쓴 `12번째 행성`을 읽어보면 된다.

... 인간은 수메르 신들의 피, 그들의 유전자로 태어났다. 작은 신들은 땅을 개척하는 노동에 지쳐 있었다. 큰 신들은 팔짱이나 끼고 지시하는 역할을 했을 뿐 노동의 고통은 작은 신들의 몫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작은 신들은 흙 운반용 삼태기를 내던지고, 꼭두새벽부터 연장을 부수고는 신들의 통치자며, '안'의 후계자인 엔릴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신들의 비상대책회의가 열렸고, 큰 신들은 작은 신들 대신 노동을 감당할 원시 노동자로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약 10여년 전인 2000년대 중반 흥미로운 기사가 해외토픽으로 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성경학자와 수메르 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이 수메르 학자들의 완승으로 끝났고, 이에 성경학자들이 패닉 상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고작 2000년의 역사로 모든 것을 말하는 성경이 8000년~1만년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현생 인류와 문명의 시초인 수메르 문명에 어떻게 필적할 수 있을 것인가?

by 케찹만땅 | 2014/05/05 14:11 | 나의 서재와 책 한권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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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채널 2nd™ at 2014/05/05 22:56
큰 신과 작은 신... 그리고 작은 신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에까지 들리자 '진짜 신'은 ... 인간을 창조하기로 했다는데 ... ;;;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나서는 ㅎㅎ 예수? 하나님? KIN하게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케찹만땅 at 2014/05/06 11:47
ㅎㅎ 우리나라 대형교회들도 KIN~ 입니다.
Commented by 라비니 at 2014/10/18 20:45
저 수메르 신화가 기독교의 원형이라는 이야기는 십년전뿐만 아니라 20세기에도 세계 언론에서 다룬적도 있었고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말을 하면 한국 기독교인들이 죽일 기세로 다 같이 달려드니까 사람들이 별로 말을 안했을 뿐이지요.

알고보면 수메르인들이 가장 떠받들었던 두무지,길가메쉬라는 신이 기독교의 신이라고 할만한 존재고 그의 연인인 이난나가 마리아라고 할만한 존재라고 하죠.

그리고 제가 이야기들을 읽어보니까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용사나 위대한 존재라고만 써있는 니므롯 이야기를 제데로된 이유나 논리도 없이 우기기만 하면서 까대는 이유가 니므롯 이야기랑 두무지,길가메쉬 이야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던데요.

제 생각엔 아마 몇천년전부터 수메르 신화 관련된 자료들이 종교인들 사이에 계속 떠돌았기 때문에 이런 종교 논리가 몇천년전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던것 같습니다.

즉 기독교인들중 대부분은 자기네들 사상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수메르 관련된 자료를 다 파괴하고 자신들의 신이라고 보여지는 존재를 재미로 내리까고 모욕하는 짓을 반복해 왔다는거죠.

웃기지 않나요? 두무지 내용을 보면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랑 너무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던데 신앙심이 정말 약간이라도 있다면 그런 모욕적인 짓은 못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ㄷㄷㄷ;
Commented by 케찹만땅 at 2014/10/19 00:06
좋은 의견입니다.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 죽일듯이
달려드는데 일가견들이 있지요. 인터넷 세상이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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