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천성이 느긋~하고, 정치와 종교 거기다 사상이나 이념 따위를 싫어하는 `알란 칼손`은 100살이나 먹은 노인이고, 시작부터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탈출하는 사실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들은 일어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놔둬야 하지. 왜냐하면 만사는 그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거의 항상 그래..."

이 노인이 손대는 사건과 지나가는 자리는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모든 것이 엉망진창 와당탕 쿵쾅인것 같지만 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술술 넘어가니 그저 아니 신기할 따름이로세. 창문넘어 도망치자 마자 벌어진 사건으로 생긴 트렁크 하나 때문에 평생 제대로 사귀지 못했던 또 그럴 새도 없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엮이면서 늘어가는데 모두가 욕심이 없는건지, 순진한 건지.. 여기서 우리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인간성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런 관련이 없고, 동 떨어진 사람들과 사건들이 이 노인 한 명과 그의 즉흥적인 행동을 구심점으로 삼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창조되니 이를 하나로 잘 엮는 기발함과 삼천포로 왕창 빠져 갈데까지 막장으로 엉뚱하게 흘러가는듯 하면서도 교묘~하게 수습되는 건 어쩌면 아마 이 세상사 만사가 너무 곧이곧대로 또는 심각하게만 돌아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작가의 저변에 깔린 관점이 보여주는 메시지 아닐지.

격동의 20세기 근, 현대사 100년을 관통하는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은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장소와 시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어려서부터 사환으로 일하며 니트로글리세린 폭약기술을 터득한 실력을 항상 십분 발휘하여 기상천외한 불꽃놀이를 평생에 걸쳐 몇 번 요긴하게 써먹은 그가 겪은 첫번째 역사적인 사건은 `스페인 내전`이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부터 본의 아니게 중요한 고비마다 그의 활약(?)이 그림자처럼 펼쳐진다. 알고보니 그가 이 세상 역사 흐름의 열쇠였어~ 이 책을 읽으면서 왜 `화염병`이 그런 명칭으로 불리는지를 알게 되었다.

비록 중남미의 내전이나 베트남 전쟁과는 인연이 없었을지라도 유럽과 미국, 중동을 거쳐 소련과 아시아를 섭렵한 것만으로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엄청난 행운과 호사를 누린 풍운아였다. 특히 스탈린의 소련을 다음으로 6.25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에서 아직 어렸던 김정일을 포함해 김일성 부자를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비록 남한은 등장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김정일을 울린 것은 스탈린일까 주인공일까.. 둘 다?

그런 그에게도 휴가라는 것은 있었는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잠시 인생을 정리할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거기에서도 인연은 계속된다. 거기서 만난 역시 기대할 것 없어보이는 여인은 운이 좋아서인지 그쪽 지역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확보해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 했지만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일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 그러나 사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그 어떤 여인이 겹쳐보이는 건 무슨 랑데뷰 홈런이 이틀 연속으로 나올 데자뷰 우연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그의 인생이 행복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말년에는 안식처와 행복을 찾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먼 산 보듯 흘러가는 네버엔딩 스토리는 막판까지 갔음에도 더 치고 나갈 기세로 끝난다. 못 말리는 영감님.. 100살이나 먹었는데 이제 좀 참으쇼. 영화는 아직 안봤지만 과연 스크린에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번에 새로 나온 저자의 차기작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듯하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 어쩌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by 케찹만땅 | 2014/07/23 11:55 | 나의 서재와 책 한권 | 트랙백(3)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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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케찹만땅 at 2014/08/04 17:43

제목 : 영화로 본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상영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화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너무 많은 책의 내용들이 뭉텅이로 생략되어 축소 각색이 되다보니 20세기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나와야 될 법한 등장인물들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기회는 없게 되었다. 꽤 많은 단역들을 섭외해야 하는 골치아픈 일은 덜었겠군.. 영화 초반에 나오는 여우와의 한판 대결은 책에서는 거의 후반부에 나오......more

Tracked from 케찹만땅 at 2014/12/04 21:14

제목 : <도서 리뷰>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창문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에 이어 요나스 요나손이 펴낸 그의 두 번째 소설. 물론,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은 없습니다. 전작보다 더욱 위트가 느껴지는 이번 작품이 북반구를 누비며 비공식적으로 현대 역사의 고삐를 이리저리 틀었던 100살이 된 할배가 겪었던 이야기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우선 주인공이 나이 어린 흑인 소녀라는 겁니다. 그 다음 칼손 노인장이 초장에 트렁크를 뚱친 것이 이야기의 발단과 구심점이 되었다면 이 소녀는 뜻하지 않게 어린 ......more

Tracked from 케찹만땅 at 2019/10/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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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살 더 잡수신 어르신 북한과의 질긴 인연의 고리가 또. . 요나스 요나손의 전작들 셈을 할 줄 하는 까막눈이 여자 이후 그 사이에 작품이 하나 더 출간되었네요.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more

Commented by 김돌핀 at 2014/07/23 15:37
저는 영화를 봤는데, 완전 매력넘치는 할배더라고요 ! =)
Commented by 케찹만땅 at 2014/07/23 18:56
저도 영화를 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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