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패문`에 분노한 이순신 장군

노승석 소장 '임진기록'에서 발견

임진왜란 당시인 1594년 3월 명나라 칙사인 담종인이 왜군의 꾐에 빠져 조선군은 왜군과 싸우지 말라는 취지로 쓴 ‘금토패문’(禁討牌文)의 전체 내용이 확인됐다. 당시 명나라 군대는 평양성에서 왜군에 크게 패한 후 일본 측과 강화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는 2차 당항포해전이 끝난 이후인 1594년 3월 10일 작성됐다. 이순신은 이 장계에서 담종인이 전하는 황제의 성지(聖旨)를 구체적으로 보고한다.

이순신은 이 ‘금토패문’을 보고 병으로 10여일 넘게 앓아 누운 와중에도 크게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다. 그가 답장으로 쓴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에는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흉악하고 교활한 적들이 (…) 병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뜻이 과연 어디 있다 하겠습니까”라고 반박하였다.

발췌 - http://v.media.daum.net/v/20161228033638264?f=m

쪽바리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와도, 갈때는 맘대로 못간다.

짱깨는 당나라 군이 유명하죠. 당나라,, 닭나라.. 당다리 닭다리 당당당~.

by 케찹만땅 | 2016/12/28 14:23 | 충무공 이순신 장군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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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행주대첩과 2차 진주성 전투 이듬해 벌어진 2차 당..
이번 주 드라마 `징비록`의 내용은 많이 슬픕니다. 행주대첩을 거둔 이후 명과 왜의 일방적 강화 협상이라는 코미디가 진행되는 사이 명군의 방관과 왜군의 유리한 협상 위치 점유를 위한 계략으로 벌어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관군 포함 5만의 백성이 모두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진 이듬해 1594년 4월 제2자 당항포 해전이 있었습니다. 아마 장군이 끝까지 왜적들을 절단내려고 하셨던 무서운 군인정신 그 이면에는 아무래도 억울하게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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