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한담 - 법정스님

그동안 읽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지난 여름부터

탐독했던 스님의 책들을 한 권씩 소개해볼까요.

눈과 입을 닫고,

귀와 마음을 열기.

사람의 얼굴은 다행히도 저마다 다르고 그 나름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각과 말과 행동양식, 즉 업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우리들은 이 지구상에서 자기의 특성을 실현하도록 초대받은 나그네들이다.

사람은 자기 자리에 맞도록, 분수와 특성에 어울리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남의 자리를 엿보거나 가로채면서 자기 특성을 버린다면 그는 도둑일뿐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실현할 수 없다. 저마다 특색을 지닌 얼굴이기 때문에 남의 얼굴을 닮아서는 안된다. 자기 얼굴을, 자기다운 얼굴을 가꾸어나가야 한다. 자기 얼굴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말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가리켜 이력서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날 우리들은 보다 많이 보다 크게 차지하여 부자만 되려고 하지, 가난을 지키면서 즐기려고는 하지 않는다. 알맞게 가난을 지킨다는 것이 오늘같은 현실에서는 부자가 되기보다 어쩌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산택한 `적당한 가난`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 내적인 가난만이 삶의 진실을 볼 수 있으며 거기에는 번뇌와 갈등이 비교적 적다.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우리들의 정신은 너무나 많은 일에 분산되어 제정신을 차리고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 내가 내 인생을 자주적으로 산다기보다는 무엇인가에 의해 삶을 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생활쓰레기와 산업의 폐기물이지만 인간의 혼을 오염시키는 것은 과다한 정보와 소음에 가까운 의미없는 말들이다.

그래서 모처럼의 여유를 가지고도 닳아진 인간의 영역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더욱더 소모시키고 있다. 제정신을 차리고 살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신을 집중하려면 우선 불필요한 말을 안해야 한다. 구개신기산 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 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면 혀를 함부로 늘리면 시비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난 것은 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지만, 그 말을 적절히 선용하지 않고 함부로 쏟아놓아 소음을 일으키면 말할 줄 모르는 짐승보다 나을게 뭔가. 믿음직한 친구란 말많은 사람이 아니라 말없는 사람이다. 사람의 위대함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체력이나 지식에 있지 않고 오로지 맑은 혼에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동물적인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높은 가치를 찾아 삶의 의미를 추구함으로써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는 바램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어떤 일을 통해서 사람과 만날 수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살아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은 곧 삶의 내용이고 일거리는 삶의 소재가 된다.

오늘날 여러 형태의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나 사무원 할 것 없이 현재의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얼마만한 보람과 의미를 느끼고 있을까. 옛날에 비해서 육체적으로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자유가 적고 일이 단조롭다.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기 때문에 형성되어가는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따라서 일 그 자체에서 오는 보람과 기쁨보다는 일에 의해서 얻는 보수와 여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나 공간에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순간순간 하는 일이 우리들 자신을 형성하고 그런 일 속에서 삶의 질을 높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한 해 동안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각종 재해의 근본적인 요인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재난을 당할때마다 우리는 묻고싶다. 누구를 위한 근대화며 무엇을 위한 경제 발전인가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생명의 존엄성을 우선해야 한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이 물량의 집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때 우리가 겪어야 할 재난은 날이 갈수록 그 기록을 새롭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내일에 가서 잘사는 게 아니라, 그날 그날을 잘살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한다면 그 미래조차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자기가 지닌 특성과 기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하기만 했던 우리로서는 우선 물질적인 충촉이 제1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가난을 면하기 위해 억척같이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자나깨나 증산이요, 소득 증대요, 수출 확대였다. 이런 결과 물질적인 충족은 얼마쯤 달성됐겠지만 그 반대 급부로써 비인간적인 문제가 여기저기서 잇따라 터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어두운 현실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명문 대학일수록 학생들 가운데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보도를 읽고, 오늘의 우리 대학 교육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싶었다. 지나간 한때는 '국적있는 교육'을 가지고 멀쩡한 아이들의 머리를 비게 하더니, 교육 개혁으로 입시제도가 엄격한 국가 관리로 바뀐 뒤로는 전에 없던 '눈치 작전', '배짱 지원'까지 등장, 신성한 학부의 통로를 심히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선량한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출 뿐, 그 장단은 정책 당국이 멋대로 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책은 오로지 전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정책 당사자의 입장이나 체면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닌 바에야 그 시정을 위한 줄기찬 국민 여론에 따를 줄도 알아야 한다.

새시대를 향한 개혁 의지도 좋지만 개혁의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에는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보다 나은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겸허한 자세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교육이 어떤 틀을 미리 만들어 무한한 잠재력과 창의력을 지닌 사람을 그 안에 집어넣어 무표정하고 획일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이 해야 할 일는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케 하고 삶의 전 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바람직한 교육은 우리를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에 전 존재를 기울여 열중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정말로 좋아서 즐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내도록 돕는 일이 되어야 한다. 끝없이 향상하고 거듭거듭 형성되어가야 할 이 나라의 팔팔한 젊은 생명들을 이미 굳어버린 기성의 틀을 가지고 그 속에 가두어 시들게 하는 일을 교육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말이다.

우리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어떤 것이 참으로 인간다운 일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교육이 참으로 해야 할 기능은 학생들을 유능한 기술자나 사무원, 관료나 법관이나 의사, 또는 돈 잘버는 재벌이나 정치인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부패하기 쉬운 우리 사회의 전체 구조를 분명히 알도록 도와서, 건전한 인간 성장과 자유와 평화에 이르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탐구하여 새로운 세계와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의 교육 현실을 가지고서야 어떻게 니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배우는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 .

. . . 삶의 질을 높여가는 것이 곧 수도생활이며, 현재를 최대한으로 사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나 수도자는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치워야 합니다. 미루면 현재에 구멍이 뚫리고 맙니다. 토머스 머튼 신부의 <칠층산>을 읽고 가장 감명깊었던 구절은, 트라피스트가 되려는 지원자에게 당부한 원장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공동체를 더 좋게 할 수도 있고 더 나쁘게 할 수도 있소. 즐겁게 살되 아무렇게나 살지는 마시오." 우리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 .

. . .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自淨其意).'는 것이 모든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했듯이, 인간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여 그 마음을 청정하게 가질 것을 강조한 교훈이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악행은 한 생각 잘못 일으킨 그 오염된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번뇌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행은 이 번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죄인이 아니고 본래 청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본래 청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은 없는 것을 보태는 일이 아니고 텅 비우는 노력이다. 텅 비우기만 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無一物中無盡藏). 따라서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수행이다. 불사선 불사악하라!

여기서 말한 자기 자신이란 분수 밖의 것을 탐하고 걸핏하면 화내고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만큼 콕 막혀있는 어리석은 일상의 내가 아니라, 본래부터 청정하고 신령스런 그 '나'를 가리킵니다. 앞에서 말한 밝은 마음과 깨어있는 자신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을 읽다가 기억에 남은 말인데, 질서가 잡힌 나라에서는 발전을 부로 측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과 지도자의 순결만이 국가의 진정한 재산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강조한 순결은 사회 윤리를 가리킨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누에 보이는 물량의 축적만을 가지고 발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곰곰 생각해본다면 간디의 이 말 뜻을 깊이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을 다할때 사람일 수 있는 것이지, 돈과 물건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온전한 사람이겠느냐는 뜻이다. 소욕지족, 조그마한 것으로 넉넉한줄 안다면 그는 살 줄을 아는 사람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한 일 행하기가 말은 쉬워도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고마운 다리도 놓여있지만 또한 어두운 함정도 파져 있다. 제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는, 즉 내 마음을 몸소 다스리지 않고는 어떤 함정에 빠질는지 알 수 없다. 저마다 서있는 자리를 똑똑히 살펴볼 일이다. 사람이 없는 텅빈 산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空山無人 水流花開

by 케찹만땅 | 2018/12/13 22:39 | 나의 서재와 책 한권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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