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소득과 코로나19 이전 세계관의 종언

인간의 특권은 의사 결정의 자유

기본 소득을 극단적인 형태로 주장하면 물의가 생깁니다. 논의되는 것은 생활하기에 충분한 보편적 기본 소득을 모든 사람이 받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제가 제안하는 수준은 기본 소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일을 해야 할 정도의 금액입니다. 일부러 생활에 충분한 돈을 지급하지 않으므로 일에 대한 유연성이나 일자리를 선택할 자유도가 증가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임금이 높은 직장뿐 아니라 자기가 가장 만족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 옵션이 늘어나면 행복도가 증가하겠지요. 수입이 20% 적어지더라도 그만큼을 기본 소득으로 보충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일에 집착할 필요도 없어지겠군요.

가격 중심 시장은 풀 타임 고용이 기본입니다. 일주일에 40시간 근무, 제로 아워 계약의 세계지요. 그런데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주 20시간의 일자리와 15시간의 자원봉사 활동을 조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 .

. . . 미국은 국내법을 변경하고 힘을 동원해 주요 교역국들에 대미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흑자 축소를 강요하고 있다. 문제는 주변국이 미국의 힘에 굴복해 달러 확보를 포기할 경우 통화 주권 약화와 경제 위기의 일상화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현재 중심국인 미국은 힘(달러와 군사력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국들이 자국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중심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중심주의 세계관의 종언

빠른 확산과 무차별적인 전염의 피해를 보여준 코로나19는 중심주의 세계관에 사망을 선고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을 봉쇄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전통적인 선진국들은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강제 격리를 동원함으로써 경제 붕괴를 초래했다. 그 결과 코로나19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은 상항에서 경제활동 재개를 강요받게 되었다.

특히 미국이 가진 핵심 경쟁력인 달러와 군사력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를 해결하는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2월 24일~5월 19일에 연방준비제도(FED)가 새로 찍어낸 달러는 약 2조 9,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9월 1일~12월 1일의 3개월 동안 FED가 찍어낸 약 2조 달러와 비교된다.

정부도 4월까지 4차례 추경을 통해 2조 9,000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이는 미국 GDP의 14%, 2020년 연방 예산 규모의 62%에 해당한다. 게다가 `취약한 사회 안전망과 유연한 노동 시장`을 가진 미국 사회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의료보험이 기본적으로 직장과 연계되어 있고 최대 실업급여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하며 전체 미국민 중 21%는 저축이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실직하는 순간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기 전에 굶어 죽을지 모른다며 비상사태와 자택 대피령 해제를 요구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전통적 선진국의 경제 붕괴는 문화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서구의 중심주의 세계관은 개인주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는 개인주의 문화는 개인의 존엄 추구가 타인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적어도 자국의 주권이 다른 국가로부터 침해받지 않는다는 근대 산업 사회의 세계관이 작동했을때 유효했다.

따라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의 세계에서 개인주의 문화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주요 서유럽 국가들의 피해가 극심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일본의 무기력도 과거 경험에 기반을 `매뉴얼` 의존과 `수치문화`에서 비롯됐다. 매뉴얼은 `새로운 처음` 앞에 작동할 수 없다. 그리고 정부의 무능력은 남들로부터 비난받거나 모욕당하는 것을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수치 문화 붕괴로 이어졌다.

반면 세계의 주목을 받은 K-방역은 연결의 세계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국경 봉쇄를 하지 않음으로써 개방성을 최대한 유지했다. 그러나 개방은 전염의 확산이라는 리스클 갖기에 전염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전염 차단은 정부와 개인의 역할 분담과 협조가 절대적이다. 정부는 검진과 진료를 무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검역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에게 신뢰를 얻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으로 이어졌다. K-방역의 성공은 연결의 세계가 요구하는 개방성, 투명성, 자발성, 연대와 협력 등이 발휘된 결과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인간형의 변화를 강요하고, 국가 간 관계의 변화도 강요하고 있다. 자율성과 협력으로 인간관계와 국제관계를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등의 공존과 공멸 중 선택을 강요한다.

코로나19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이 진정되면 금융위기 이후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는게 문제점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일회성 사건이 아닌 이상 과거 방식의 대응은 시간 벌기게 불과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기후 위기, 자연 파괴, 경제 위기 등과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는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설계한 제도들에 있다. 그런 점에서 성장이 멈추면 사회는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는 토마스 세들라체크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선악의 경제학> 저자인 세들라체크는 경제학이 도덕적 가치를 살려 인간의 윤리적 감정에 적합한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에 부적합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격류같은 경쟁속에서 물에 빠져죽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 돕기보다 최고의 수영 선수를 선별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세들라체크는 경쟁을 인간의 본능으로 본다. 그는 비판을 허용하면서 자본주의를 영원히 진보할 수 있는 제도로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협력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후 위기, 자연 파괴, 경제 위기 등이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고, 문제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납부하고 선진국이 가난한 국가에 과감한 지원을 하는 그런 자본주의를 과연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적어도 대공황보다 나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세계 경제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 미국은 금융 위기의 핵심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초금융 완화(새로운 부채)로 금융위기(낡은 부채)를 덮었을 뿐이다.

초금융 완화가 장기간 지속하면서 좀비 기업의 증가 → 생산성 둔화 →성장 둔화 → 초금융 완화의 지속이라는 `저금리 함정` 악순환에 빠질 정도로 경제 체력은 금융 위기 이전보다 크게 나빠졌다. 기술 기업들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투자하기 보다는 인수를 통해 시장 집중을 강화하거나 차입한 자금으로 바이백(Buyback)을 펼쳐 수익이나 주가를 끌어올리며 혁신을 약화시키고 말았다.

by 케찹만땅 | 2020/07/16 21:35 | 세상만사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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